합리론 1강. 데카르트: 방법적 회의와 코기토
전부 의심해서 의심 불가능한 것 하나를 찾는다. 근대 철학이 "나"에서 다시 시작된다.
풀고 시작
무너진 세계에서
데카르트(1596~1650)의 시대는 확실성의 붕괴기였다. 종교개혁으로 신앙의 권위가 쪼개졌고,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우주의 그림을 뒤집었고, 재발견된 고대 회의주의(몽테뉴)가 유행했다. 수학자이기도 한 데카르트의 야심은 수학의 확실성을 지식 전체에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기초 공사부터. 『성찰』(1641)의 유명한 첫 작업이 방법적 회의다.
회의의 세 단계
의심의 강도를 단계적으로 올린다.
- 감각의 기만: 감각은 가끔 속인다(물에 잠긴 막대). 한 번이라도 속인 증인은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
- 꿈 논증: 지금이 꿈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는가. 꿈속에서도 생생했다. 감각 세계 전체가 통째로 의심에 들어간다.
- 악마 가설: 전능한 악마가 나를 체계적으로 속인다면? 그렇다면 수학마저(2+3=5조차) 의심 가능하다.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하나가 남는다.
코기토: 의심할 수 없는 것
속고 있다면, 속고 있는 내가 있어야 한다. 의심한다는 것 자체가 의심하는 나의 존재를 증명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악마가 아무리 전능해도, 존재하지 않는 나를 속일 수는 없다. 이것이 아르키메데스의 점이다.
단, 여기서 확보된 "나"는 몸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res cogitans)뿐이다. 몸과 세계는 아직 의심 속에 있다.
재건축: 신과 세계
고립된 코기토에서 세계로 돌아가는 다리로 데카르트는 신을 쓴다. 내 안에 무한하고 완전한 존재의 관념이 있는데, 유한한 나는 그 관념의 원인일 수 없다. 따라서 완전한 존재가 실재하며, 완전한 신은 기만자일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명석하고 판명하게" 지각하는 것은 참이다. 감각 세계가 복권된다.
이 다리에는 유명한 균열이 있다. 명석판명한 지각을 믿으려면 신이 필요한데, 신 존재 증명 자체가 명석판명한 지각에 기댄다. 데카르트의 순환이다. 후대는 다리(신)는 버리고 출발점(의식의 확실성)만 물려받았다.
실체 이원론과 그 청구서
세계에는 두 실체가 있다. 정신(사유하는 것, 연장 없음)과 물질(연장된 것, 사유 없음). 물질계는 수학으로 완전히 기술되는 기계다(동물도 기계다). 이 분할은 과학에 물질계를 통째로 내주는 면허장이 되었다.
청구서도 왔다. 전혀 다른 두 실체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발을 찧으면(물질) 아픔(정신)이 생기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나. 데카르트는 송과선을 지목했지만 임시방편임은 자신도 알았다. 이 심신문제는 지금까지 열려 있고, 심리철학 과목의 주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