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 3강. 의무론
다섯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옳음은 좋음의 계산에 앞선다.
풀고 시작
칸트 재방문: 계산할 수 없는 것
의무론(deontology)의 원형은 칸트다(칸트 3강). 옳음의 기준은 결과가 아니라 행위의 원리다. 준칙이 보편법칙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을 한낱 수단으로만 대하지 않는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나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라." (『윤리형이상학 정초』)
이 정식이 앞 강의 장기 이식 사례를 정확히 절단한다. 다섯을 구하려고 한 명을 해체하는 것은 그를 순수한 수단, 장기의 저장고로 사용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가격이 아니라 존엄이 있으므로 교환과 합산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칸트의 의무는 예외 없는 절대적 명령이었고, 여기서 악명 높은 문제가 생긴다. 살인자가 친구의 행방을 물을 때조차 거짓말은 금지되는가. 칸트는 그렇다고 답했고, 후대의 의무론은 이 경직성을 수술하는 데서 출발한다.
로스: 조건부 의무
로스(W. D. Ross)의 『옳음과 좋음』(1930)이 그 수술이다. 우리에게는 복수의 조건부 의무(prima facie duty, 현대 용어로 pro tanto duty)가 있다. 약속을 지킬 의무(신의), 해악을 갚을 의무(보상), 은혜에 답할 의무(감사), 정의, 선행, 자기 계발, 악행 금지. 각 의무는 실재하는 도덕적 힘을 갖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그 상황에서 더 엄중한 의무가 실제 의무(duty proper)가 된다. 친구와의 약속과 물에 빠진 아이가 충돌하면 약속은 진다. 그러나 졌다고 소멸하는 것이 아니어서, 사과와 해명이라는 도덕적 잔여(moral residue)를 남긴다. 이 구조는 단일 원리 이론(공리주의, 칸트)보다 도덕 경험의 결을 잘 살린다는 강점이 있지만, 충돌을 판정하는 상위 규칙이 없어 결국 직관에 기댄다는 비판을 받는다. 로스는 그것이 결함이 아니라 도덕의 실상이라고 응수했다.
이중효과와 행위자 상대적 제약
의무론의 정밀 부품 두 개를 보자.
첫째, 이중효과 원리(doctrine of double effect). 아퀴나스의 정당방위 논의에서 기원한 이 원리는, 좋은 결과를 의도하며 나쁜 결과를 예견만 하는 행위와 나쁜 결과를 의도하거나 수단으로 삼는 행위를 구분한다. 허용 조건은 대략 넷이다. 행위 자체가 그르지 않을 것, 나쁜 결과를 의도하지 않을 것, 나쁜 결과가 좋은 결과의 수단이 아닐 것, 두 결과 사이에 비례성이 있을 것. 군수공장 폭격으로 민간인 사망을 예견하는 것과 민간인 사살을 수단으로 삼는 테러의 구분, 말기 환자의 고통 완화를 위한 투약이 죽음을 앞당기는 경우의 정당화가 모두 이 원리에 기댄다.
둘째, 행위자 상대적 제약(agent-relative constraint). 의무론의 제약은 "살인이 일어나지 않게 하라"가 아니라 "네가 살인하지 말라"다. 내가 한 명을 죽이면 다른 곳의 살인 다섯 건을 막을 수 있어도, 제약은 나의 살인을 금지한다. 결과주의자는 여기서 의무론의 역설을 겨눈다. 살인이 그토록 나쁘다면 살인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 왜 금지되는가. 제약을 지키느라 더 많은 제약 위반을 방치하는 이론은 비합리적이지 않은가. 의무론자의 응답은, 도덕의 주어는 익명의 세계 상태가 아니라 각 행위자이며, 나의 손과 남의 손은 도덕적으로 같은 손이 아니라는 것이다.
트롤리 문제: 두 이론의 실험실
풋(Philippa Foot)이 1967년에 고안하고 톰슨(Judith Jarvis Thomson)이 변주한 트롤리 문제는 두 이론의 차이를 실험실에 올린다.
| 사례 | 결과 | 다수 직관 | 후보 설명 |
|---|---|---|---|
| 스위치 | 5 구조, 1 사망 | 허용 | 죽음은 예견된 부수 효과 |
| 육교에서 밀기 | 5 구조, 1 사망 | 금지 | 사람을 트롤리를 멈추는 수단으로 사용 |
행위 공리주의는 두 사례를 구분할 자원이 없다. 결과가 같기 때문이다. 의무론은 이중효과와 수단 금지로 비대칭을 설명한다. 물론 이 설명이 최종 판정은 아니다. 톰슨 자신이 말년에 스위치 사례의 허용 직관까지 의심했고, 직관의 출처가 정합적 원리인지 진화가 남긴 감정 반응인지도 다투어진다(이 논쟁은 6강에서 다시 본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순수한 총량 계산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구조(의도와 예견, 수단과 부수 효과, 나의 행위와 남의 행위)가 우리의 도덕 판단 깊숙이 박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규칙과 의무의 목록만으로 좋은 삶이 다 설명되는가. 이 물음이 4강 덕윤리로 이어진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살인자가 친구의 행방을 묻는 상황에서 로스라면 어떤 의무들의 충돌로 사태를 기술하고 어떻게 판정하겠는가.
- 스위치를 당기는 사람과 육교에서 미는 사람의 차이가, 원리의 차이가 아니라 심리적 거리감의 차이일 뿐이라면 직관은 증거 자격을 잃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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