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1강. 포퍼: 반증주의
과학을 과학으로 만드는 것은 옳다는 증거가 아니라, 틀릴 수 있는 방식이 명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풀고 시작
구획 문제: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선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가 평생 붙든 질문은 하나다. 과학과 비과학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는 이것을 구획 문제(demarcation problem)라 불렀다. 빈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답을 갖고 있었다. 검증가능성, 즉 경험으로 참임을 확인할 수 있는 명제만이 유의미하다는 기준이다. 포퍼가 보기에 이 답은 두 번 실패한다. 첫째, 보편 법칙("모든 금속은 전기가 통한다")은 유한한 관찰로 결코 검증되지 않으므로, 이 기준대로면 과학의 심장인 법칙들이 무의미해진다. 둘째, 이 기준은 사이비 과학을 걸러내지 못한다. 점성술도 확인 사례라면 얼마든지 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증이 아니라 반증
포퍼의 통찰은 논리적 비대칭에서 출발한다. 흰 백조를 백만 마리 관찰해도 "모든 백조는 희다"는 증명되지 않지만, 검은 백조 한 마리는 그 명제를 확정적으로 무너뜨린다. 이 파괴의 논리가 논리학 3강에서 본 후건부정(modus tollens)이다. 이론 T가 예측 P를 함축하는데 P가 거짓으로 관찰되면, T는 거짓이다. 이 추론은 연역적으로 타당하다. 반면 P가 참으로 관찰되었을 때 T가 참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후건긍정의 오류다. 그래서 포퍼의 기준은 이렇다. 이론이 과학적이려면 반증가능해야 한다. 어떤 관찰이 나오면 자신이 틀리는지를 스스로 걸어야 한다. 금지하는 것이 많은 이론일수록, 즉 위험한 예측을 하는 이론일수록 좋은 이론이다.
흄에 대한 응답: 귀납 없는 과학
경험론 3강에서 흄은 귀납이 이성적으로 정당화되지 않음을 보였다. 포퍼의 응답은 대담하다. 귀납을 구출하는 대신 버린다. 과학은 관찰을 쌓아 일반화하는 활동이 아니라, 추측(conjecture)을 먼저 던지고 그것을 반박(refutation)하려 애쓰는 활동이다. 이론은 경험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발명되며, 경험의 역할은 발명된 이론을 죽이는 것이다. 살아남은 이론은 참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라 용인(corroboration)되었을 뿐이다. 시험을 통과했다는 과거의 기록일 뿐, 내일의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과학의 논리에서 귀납이 사라지므로 흄의 문제는 풀리는 것이 아니라 우회된다. 다만 반론이 있다. 용인된 이론을 내일의 실천(다리 설계, 약 처방)에 쓰라고 권하는 순간, 미래에 대한 기대가 다시 스며드는 것 아닌가. 이 지적은 포퍼 비판의 고전적 급소로 남아 있다.
정신분석과 점성술: 반증 불가능성이라는 악덕
포퍼는 1919년 빈에서 결정적 대비를 목격했다.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심리 이론은 어떤 인간 행동이든 설명해 냈다. 아이를 구한 사람도, 아이를 해친 사람도 각 이론의 틀 안에서 매끄럽게 해석되었다. 반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은 태양 곁을 지나는 빛이 특정 각도로 휜다고 예측했고, 에딩턴의 일식 관측이 다르게 나왔다면 이론은 무너질 판이었다. 포퍼는 『추측과 논박』(1963)에서 이렇게 썼다. "이론이 반박될 수 없다는 것은, 흔히 생각하듯 그 이론의 미덕이 아니라 악덕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은 아무것도 금지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금지하지 않는 이론은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점성술이 비과학인 이유도 틀린 예측 때문이 아니라, 틀림을 인정할 조건을 명시하지 않고 실패를 해석으로 흡수하기 때문이다.
내부의 문제: 반증은 생각만큼 깔끔하지 않다
반증주의 자체가 시험대에 오른다. 뒤앙(Pierre Duhem)이 지적했고 콰인(W. V. O. Quine)이 확장한 뒤앙-콰인 논제에 따르면, 이론은 결코 단독으로 시험되지 않는다. 예측은 언제나 이론 더하기 보조 가설(관측 장비 이론, 초기 조건, 배경 가정)의 묶음에서 나온다. 예측이 빗나갔을 때 논리가 말해 주는 것은 "묶음 어딘가가 틀렸다"뿐이며, 화살이 핵심 이론을 향하는지 보조 가설을 향하는지는 논리가 결정하지 못한다. 실제 과학사가 이를 보여 준다. 천왕성 궤도가 뉴턴 역학의 예측을 벗어났을 때 과학자들은 뉴턴을 버리지 않고 미지의 행성을 가정했고, 그렇게 해왕성이 발견되었다. 반증 회피가 오히려 위대한 과학이었던 셈이다. 포퍼도 이를 알았고, 임시방편(ad hoc) 수정, 즉 이론의 시험가능성을 늘리지 않는 땜질만을 금지하는 방법론적 결단으로 답했다. 그러나 어떤 수정이 임시방편인지는 사후에야 분명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 틈새를 정면으로 파고든 사람이 다음 강의의 쿤이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천왕성 변칙 앞에서 뉴턴 역학을 지킨 것은 옳은 선택이었고, 수성 근일점 변칙 앞에서 뉴턴을 버린 것도 옳은 선택이었다. 두 경우를 미리 구분할 수 있는 규칙이 있을까, 아니면 사후의 성공이 정당화의 전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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