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론 2강. 스피노자: 신 즉 자연
실체는 하나뿐이다. 신과 자연은 같은 것의 두 이름이고, 자유는 필연의 이해다.
풀고 시작
파문당한 성자
스피노자(1632~1677)는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자랐고, 24세에 파문당했다. 저주 문서가 남아 있을 만큼 격렬한 추방이었다. 이후 평생 렌즈를 갈며 살았고, 하이델베르크 교수직도 사상의 자유를 위해 거절했다. 주저 『에티카』는 사후 익명으로 출판됐다. 기하학 책처럼 정의·공리·정리·증명으로 쓰인 윤리학 책이다. 데카르트의 방법(확실성의 연역)을 데카르트보다 철저하게 밀어붙인 결과가, 데카르트를 무너뜨렸다.
실체는 하나뿐이다
데카르트는 실체를 "존재하기 위해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하고 정신과 물질 둘을 세웠다. 스피노자는 그 정의를 진지하게 받는다. 그 정의에 맞는 것은 자기 원인(causa sui)인 것 하나뿐이다. 유한한 정신도 물질도 자격 미달이다. 유일 실체가 곧 신이고, 신이 곧 자연이다.
- 정신과 물질은 실체가 아니라 유일 실체의 속성(우리가 실체를 파악하는 두 방식)이다.
- 개별 사물들(나, 너, 이 나무)은 실체의 양태(변용)다. 파도가 바다의 일시적 주름이듯.
- 심신문제는 이렇게 풀린다(해소된다). 정신과 몸은 상호작용하는 두 실체가 아니라 같은 하나를 두 속성에서 본 것이다(평행론). 발 찧음과 아픔은 인과가 아니라 동일 사건의 두 기술이다.
필연의 세계와 코나투스
신 = 자연은 인격이 아니므로 목적도 계획도 없다. 모든 것은 신적 본성의 필연에서 따라 나온다. 기하학에서 정리가 공리에서 따라 나오듯. 우연도, 기적도, "세계가 달리 될 수 있었음"도 없다. 목적론은 인간이 자기 욕망을 자연에 투사한 상상이다.
각 사물의 본질은 코나투스(conatus), 자기 존재를 지속하려는 노력이다. 인간의 감정도 이 역학으로 설명된다. 기쁨은 완전성(활동 역량)의 증가, 슬픔은 감소다. 『에티카』 3~4부는 감정의 기하학이다. 미움·질투·후회가 어떤 관념의 조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지를 정리로 증명한다.
자유: 필연의 이해
의지의 자유는 환상이다. 던져진 돌이 의식이 있다면 자기가 날기를 원한다고 믿을 것이다. 우리는 욕망을 의식하지만 욕망의 원인을 모르기에 자유롭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결론은 체념이 아니다. 자유란 필연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필연의 이해다. 수동적 감정(외부 원인에 휘둘림)은 그 원인을 명석하게 이해하는 순간 능동적 이해로 바뀐다. 최고의 삶은 "영원의 관점에서(sub specie aeternitatis)" 세계를 보는 것, 신 즉 자연에 대한 지적 사랑이다. 파문당한 자가 도달한, 신에 대한 가장 깊은 사랑이라는 역설.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려울 뿐 아니라 드물다"가 『에티카』의 마지막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