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5강. 조선 성리학 논쟁
주희가 남긴 미세한 균열 하나를 두고, 조선의 학자들은 백 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도덕 감정 이론 논쟁을 벌였다.
풀고 시작
무대: 주희가 남긴 균열
주희는 이(理)와 기(氣)가 "떨어지지도 섞이지도 않는다"고 했지만,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에 둘이 각각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정밀하게 확정하지 않았다. 조선의 논쟁은 이 빈틈에서 시작된다. 재료는 두 감정 목록이다. 사단(四端)은 맹자의 측은·수오·사양·시비의 마음으로, 정의상 순선하다. 칠정(七情)은 『예기(禮記)』의 희로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 곧 인간의 감정 전체로,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물음은 이것이다. 순선한 감정과 선악 미정의 감정이 어떻게 한 마음에서 나오는가. 각각 이와 기 중 무엇이 발한 것인가.
이황 대 기대승: 8년의 편지
논쟁은 1559년, 58세의 이황(李滉, 퇴계, 1501~1570)과 32세의 신진 기대승(奇大升, 고봉, 1527~1572)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시작되어 8년간 이어졌다. 이황의 최종 정식은 호발설(互發說)이다. "사단은 이가 발하고 기가 그것을 따르며, 칠정은 기가 발하고 이가 그것에 탄다(사단 이발이기수지, 칠정 기발이이승지, 四端 理發而氣隨之 七情 氣發而理乘之)." 사단과 칠정은 근원이 다른 두 갈래라는 것이다. 이황의 동기는 도덕적이다. 순선한 도덕 감정의 원천을 기의 우연성에서 분리해 확보하지 않으면, 도덕의 존엄이 흐려진다고 본 것이다.
기대승의 반론은 주희의 원칙에 충실하다. 이는 원리일 뿐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며(이는 발할 수 없다), 발하는 것은 언제나 기다. 게다가 사단은 칠정 밖의 별도 감정이 아니라 칠정 가운데 절도에 맞는 선한 부분을 가려 부른 이름일 뿐이다. 감정의 근원을 둘로 나누면 마음이 두 개가 되는 불합리에 빠진다. 이황은 반론을 수용해 표현을 다듬으면서도 호발의 구도는 끝까지 지켰다. 학계는 이 대립을 도덕 감정의 특별한 지위를 지키려는 가치론적 요구(이황)와 형이상학적 정합성의 요구(기대승)의 충돌로 읽는다. 이황의 이발(理發)이 주희 체계의 일탈인지 창조적 심화인지는 지금도 한국철학 연구의 핵심 쟁점이다.
이이의 정리: 기발이승일도설
한 세대 뒤 이이(李珥, 율곡, 1536~1584)는 성혼(成渾)과의 논쟁에서 기대승의 노선을 체계화한다.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 곧 "발하는 것은 기요, 발하는 까닭이 이다(발지자 기야, 소이발자 이야)"라는 한 길만 있다는 것이다. 사단이든 칠정이든 모든 감정은 기가 발하고 이가 그 위에 타는 단일 구조이며, 사단은 칠정 중 선한 것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이가 아니면 기가 발할 곳이 없고, 기가 아니면 이가 발할 수 없다"는 정식과 함께, 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된다는 이통기국(理通氣局)으로 보편 원리와 개별 차이를 설명했다. 이 대립은 학파와 당파(퇴계학파와 남인, 율곡학파와 서인)로 이어져 조선 후기 사상 지형을 갈랐다. 다만 학문적 계보와 정치적 당파의 결합 정도에 대해서는 과장을 경계하는 연구도 있다.
호락논쟁, 그리고 논쟁의 의의
18세기 율곡학파(노론) 내부에서 호락논쟁(湖洛論爭)이 벌어진다. 쟁점은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곧 사람의 본성과 사물(동물)의 본성이 같은가이다. 충청 지역의 호론(湖論, 한원진 중심)은 기질을 고려하면 사람과 동물의 성이 다르다고 했고, 서울 지역의 낙론(洛論, 이간 중심)은 본연지성의 차원에서 같다고 했다. 이는 이일분수의 "이일"과 "분수"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는가의 문제이자, 도덕성의 범위(도덕적 본성은 인간만의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낙론의 "만물의 본성이 같다"는 감각이 북학파의 개방적 태도와 연결된다는 해석이 있으나, 직결 여부는 논쟁적이다.
이 논쟁들의 의의는 분명하다. 첫째, 조선 성리학은 주자학의 수입품 정리가 아니라, 주희 체계의 내적 긴장을 발견하고 수백 년간 정밀하게 밀어붙인 독자적 철학 작업이었다. 도덕 감정의 원천과 지위라는 쟁점은 이성과 감정의 관계를 묻는 현대 도덕심리학·메타윤리의 물음과 정확히 겹치며, 사단칠정 논쟁을 도덕 감정 이론으로 재구성하는 영어권 연구도 활발하다. 둘째, 논쟁은 끝이 아니라 전환을 낳았다. 조선 후기 정약용(丁若鏞, 다산, 1762~1836)은 성리학의 틀 자체를 흔들었다. 성은 형이상학적 실체가 아니라 선을 좋아하는 기호(嗜好)일 뿐이며, 덕은 본성에 갖춰진 것이 아니라 행위 이후에 성립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理) 중심 형이상학에서 실천과 행사(行事) 중심으로의 이 전환을 근대적 사유의 맹아로 볼지, 유교 내부의 재해석으로 볼지도 열린 논쟁이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도덕 감정(측은지심)과 일반 감정(분노, 욕구)은 정말 종류가 다른 감정인가, 아니면 같은 감정의 다른 쓰임인가? 현대 도덕심리학이라면 어느 쪽 손을 들까?
- 인물성동이 논쟁을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현대 논쟁의 선취로 읽는 것은 정당한 독해인가, 시대착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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