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4강. 성리학
천 년 동안 불교에 밀리던 유학은, 불교의 무기를 빌려 불교를 넘어서는 형이상학을 세웠다.
풀고 시작
응전으로서의 신유학
한나라 이후 천 년 가까이 동아시아 사상계의 주도권은 불교와 도교에 있었다. 유학은 과거시험용 경전 주석학으로 위축되었고, 우주와 마음에 대한 깊은 물음은 사찰과 도관이 독점했다. 당나라 한유(韓愈)의 불교 비판을 거쳐, 송나라(960~1279)에 이르러 유학자들은 정면 대응을 시작한다. 주돈이·장재·정호·정이 형제를 거쳐 주희(朱熹, 1130~1200)가 집대성한 이 흐름을 성리학(性理學), 신유학이라 부른다.
전략이 흥미롭다. 불교를 배척하면서도 불교가 제기한 문제, 곧 마음의 본성과 우주의 궁극 원리에 대한 물음을 유가의 언어로 다시 답하는 것이다. 불교의 공(空)이 윤리와 가족과 사회를 허무는 출가의 철학이라 비판하되, 그에 맞설 형이상학이 없으면 싸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성리학은 수양론에 머물던 유학에 우주론과 심성론이라는 골격을 새로 세웠다. 학계에서는 성리학 개념 틀(이일분수 등)에 화엄과 선의 영향이 얼마나 깊이 스며 있는지가 꾸준한 연구 주제다.
이기론: 원리와 재료
주희 형이상학의 뼈대는 이기론(理氣論)이다. 모든 사물은 이(理)와 기(氣)의 결합이다. 이는 그 사물이 그러한 까닭(소이연, 所以然)이자 마땅히 그래야 할 법칙(소당연, 所當然)이고, 기는 그 원리를 담아 실현하는 재료이자 에너지다. 배와 수레의 비유로, 배를 물에서 가게 하는 원리가 이라면 목재와 구조는 기다. 둘의 관계에 대한 주희의 정식은 "서로 떨어지지 않되 서로 섞이지 않는다(불상리 불상잡, 不相離 不相雜)"이다. 이 없는 기도, 기 없는 이도 현실에 없지만, 양자는 범주적으로 구별된다. 논리적 선후를 물으면 주희는 "이가 먼저"라고 답하지만, 시간적 선후는 아니라고 단서를 단다. 이 미묘한 균형이 후대 논쟁(조선의 사단칠정 논쟁을 포함)의 불씨가 된다.
만물의 이를 총괄하는 궁극자가 태극(太極)이며, "통체는 하나의 태극이요, 사물마다 각각 하나의 태극을 갖춘다(이일분수, 理一分殊)". 달 하나가 만 개의 강에 비치는 것과 같다는 비유(월인만천, 月印萬川)가 이를 요약한다.
성즉리와 격물치지: 본성 회복의 공부
심성론에서 주희의 명제는 성즉리(性卽理), 곧 "본성이 곧 이"다. 하늘의 이가 사람에게 부여된 것이 본성이므로, 맹자의 성선은 형이상학적 근거를 얻는다. 본연지성(本然之性)은 순선하지만, 그것이 기질(기질지성, 氣質之性)을 통해 발현되는 순간 맑고 탁한 차이가 생긴다. 악은 본성의 문제가 아니라 기질의 흐림 문제이며, 따라서 공부란 흐린 기질을 맑혀 본연의 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방법론이 『대학(大學)』의 격물치지(格物致知)다. 주희는 격물을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궁구함"으로 풀고, 이렇게 보완한다. "오늘 한 사물을 궁구하고 내일 또 한 사물을 궁구하여, 쌓기를 오래하면 하루아침에 활연관통(豁然貫通)에 이른다." 개별 사물의 이치 탐구가 축적되면 만물을 꿰는 하나의 이에 통달한다는 것이다. 실천 강령은 존천리 거인욕(存天理 去人欲), 하늘의 이치를 보존하고 사사로운 욕망을 제거하라는 것이다. 이 명제는 후대에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까지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로 굳었다는 비판(청대 대진, 근대의 신문화운동)을 받았고, 주희 본의가 욕망 일반의 부정이었는지 과도한 사욕의 절제였는지는 지금도 해석이 갈린다.
왕양명: 심즉리와 지행합일
명나라의 왕수인(王守仁, 호 양명, 1472~1529)은 주자학 내부에서 자라나 주자학을 뒤집었다. 젊은 시절 격물 공부를 실행한다며 이레 동안 대나무를 바라보다 병만 얻은 일화가 전환점이다. 이치가 사물에 있다면 왜 궁구해도 잡히지 않는가. 유배지 용장에서의 깨달음(용장오도, 龍場悟道)이 답이었다. "마음이 곧 이다(심즉리, 心卽理). 마음 밖에 이치가 없고, 마음 밖에 사물이 없다(심외무리 심외무물, 心外無理 心外無物)." 효의 이치는 부모라는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향한 내 마음에 있다. 도덕 법칙의 소재지를 외부 사물에서 마음으로 옮긴 것이다.
여기서 지행합일(知行合一)이 따라 나온다. "안다면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다". 주희처럼 먼저 알고 나중에 행하는(선지후행) 구도를 취하면 앎이 행위와 분리된 채 공부가 끝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참된 앎은 좋은 냄새를 맡으면 곧 좋아하듯 행위와 한 몸이다. 만년의 왕양명은 이를 치양지(致良知), 타고난 도덕적 앎(양지)을 온전히 발휘하라는 가르침으로 압축했다. 주자학과 양명학의 대립은 도덕 인식론의 고전적 대립이기도 하다. 도덕적 앎은 탐구로 획득되는가(주희), 이미 갖춰진 것의 발현인가(왕양명). 이 구도는 조선에서 주자학이 정통이 되고 양명학이 이단시되는 사상사와 함께, 다음 강의 조선 성리학 논쟁의 배경이 된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격물치지의 사물 탐구는 근대 자연과학의 탐구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성리학에서 과학이 자라나지 않은 이유는 개념 틀의 문제였을까?
-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아직 모르는 것"이라는 왕양명의 명제는 아크라시아(의지박약)를 설명하는가, 부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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