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2강. 보편자 문제의 현대판
두 장미가 같은 붉음을 띤다. 이때 "같은" 것이 정말 하나 있는가, 아니면 닮은 둘이 있을 뿐인가.
풀고 시작
천 년 만에 돌아온 같은 질문
중세철학 2강(보에티우스와 보편논쟁)에서 본 보편논쟁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름을 바꿔 살아 있다. 현대판 정식화는 이렇다. 붉은 장미와 붉은 소화전은 속성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가 여럿에"(One over Many). 이 겉모습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이면 보편자(universal), 곧 여러 곳에 통째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반복 가능한 존재자를 인정하는 실재론이 된다. 거부하면 세계에는 개별자뿐이라는 유명론(nominalism)이 되고, 그러면 "둘 다 붉다"가 왜 참인지를 보편자 없이 설명해야 하는 숙제가 남는다. 1강의 도구로 말하면, 우리의 최선의 이론이 속성에 양화하는가, 그 양화를 제거할 수 있는가의 싸움이다.
암스트롱: 과학이 골라 주는 보편자
현대 실재론의 대표는 암스트롱(D. M. Armstrong, 1926~2014)이다. 그의 실재론은 두 가지 점에서 플라톤과 다르다. 첫째, 보편자는 이데아처럼 딴 세상에 있지 않고 예화된 곳에만 있다(아리스토텔레스적 내재 실재론). 예화되지 않은 보편자는 없다. 둘째, 어떤 보편자가 실제로 있는지는 안락의자의 개념 분석이 아니라 완성된 과학이 후험적으로 결정한다. "붉음" 같은 일상 술어가 아니라 질량, 전하 같은 근본 속성이 진짜 보편자 후보다. 술어마다 보편자를 대응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암스트롱이 보편자를 두는 이유는 유사성만이 아니다. 자연법칙을 보편자 사이의 관계로 설명하고, 참인 문장에 진리제조자(truthmaker)를 대 주기 위해서다. 반론도 있다. 하나의 존재자가 통째로 여러 곳에 동시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 불가능하다는 고전적 의문, 그리고 예화 관계 자체가 또 보편자라면 무한 후퇴가 시작된다는 브래들리식 후퇴가 대표적이다.
유명론의 전략들: 집합으로, 유사성으로
유명론은 붉음을 무엇으로 대체하는가. 집합 유명론은 "붉다"를 "붉은 것들의 집합의 원소다"로 바꾼다. 그러나 공외연 문제가 기다린다. 심장 있는 생물과 신장 있는 생물이 정확히 같은 집합이라면, 심장 있음과 신장 있음이라는 명백히 다른 두 속성이 하나로 뭉개진다. 유사성 유명론은 집합 대신 유사성을 기초로 삼는다. 붉은 것들은 서로 적절히 닮았기에 한 부류를 이룬다는 것이다. 여기에 러셀의 유명한 반격이 있다. 『철학의 문제들』(1912)에서 러셀은 이렇게 쓴다. "보편자 흼을 피하려고 특정한 흰 조각과의 유사성에 호소한다면, 그 유사성 자체가 여러 쌍 사이에 성립하는 보편자여야 한다. 우리는 보편자를 문밖으로 쫓아냈지만 유사성이라는 보편자를 도로 들인 것이다." 유사성 유명론자는 유사성만은 원초적 사실로 받아들이되 그것을 존재자로 세지 않는 길로 응수하지만, 이것이 해결인지 이름 붙인 항복인지가 논쟁거리다.
트롭: 개별화된 속성이라는 제3의 길
트롭 이론(trope theory)은 중간 길이다. 윌리엄스(D. C. Williams)가 1953년에 체계화한 이 입장에 따르면, 이 장미의 붉음과 저 소화전의 붉음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개별적 속성, 곧 트롭이다. 속성은 실재하지만 반복되지 않는다. "같은 붉음"이란 정확히 닮은 트롭들의 부류를 가리키는 말이 된다. 사물은 트롭들의 다발로 분석된다.
| 입장 | 붉음의 정체 | 대표 난점 |
|---|---|---|
| 실재론(암스트롱) | 여러 곳에 예화되는 하나의 보편자 | 다중 위치의 이해 가능성, 예화 후퇴 |
| 집합 유명론 | 붉은 것들의 집합 원소임 | 공외연 속성의 구분 실패 |
| 유사성 유명론 | 원초적 유사성으로 묶인 부류 | 유사성의 후퇴(러셀) |
| 트롭 이론 | 반복 불가능한 개별 속성 | 트롭 간 정확한 유사성을 다시 설명해야 함 |
트롭 이론의 난점도 대칭적이다. 트롭들 사이의 "정확한 유사성"이 다시 원초적 사실로 남고, 유사성 유명론의 숙제가 한 층 아래로 이사했을 뿐이라는 비판이 있다. 결국 어느 진영도 공짜가 없다. 무엇을 원초적으로 받아들일지의 비용 비교가 현대 보편자 논쟁의 실제 모습이며, 이 비용 계산법은 5강의 가능세계 논쟁에서 다시 쓰인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정확히 닮음"을 원초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과 보편자를 받아들이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큰 형이상학적 비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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