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 1강. 사회계약론
국가는 신이 세운 것도 자연이 준 것도 아니다. 우리가 계약으로 만든 것이라면, 계약 조건을 다시 물을 수 있다.
풀고 시작
질문의 전환: 왜 복종하는가
과학철학이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를 물었다면, 정치철학은 "우리는 왜 복종하는가"를 묻는다. 17세기까지 표준 답은 왕권신수설이었다. 사회계약론(social contract theory)은 답의 방향을 뒤집었다. 정치권력의 근거는 위(신)가 아니라 아래(개인들의 동의)에 있다. 이를 보이기 위해 계약론자들은 공통의 사고실험을 쓴다. 국가가 없는 상황, 곧 자연상태(state of nature)를 상상하고, 그 상태의 결함이 어떤 국가를 정당화하는지 추론한다. 자연상태를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정당화되는 국가가 달라진다. 홉스, 로크, 루소는 같은 도구로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홉스: 공포에서 태어난 리바이어던
홉스(1588~1679)는 잉글랜드 내전의 한복판에서 『리바이어던』(1651)을 썼다. 그의 자연상태 논증은 세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능력이 대체로 평등하고(가장 약한 자도 모략으로 가장 강한 자를 죽일 수 있다), 자기보존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며, 서로의 의도를 확신할 수 없다. 이 조건에서는 경쟁, 불신, 공명심이 겹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이 귀결된다. 원전의 유명한 구절은 이렇다. "그러한 상태에서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험악하고, 잔인하고, 짧다." 산업도 학문도 사회도 불가능하다. 탈출구는 하나뿐이다. 각자가 자연권을 주권자에게 양도하는 계약을 맺고, 계약을 강제할 압도적 공통 권력, 곧 리바이어던을 세우는 것이다. 홉스에게 주권은 절대적이고 불가분이어야 한다. 주권이 분할되거나 제한되면 그 틈에서 내전이 재발하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계약의 당사자다. 계약은 신민들 사이에서 맺어지고 주권자는 계약 바깥에 있다. 따라서 주권자는 계약 위반으로 고발될 수 없다.
로크: 자연권과 제한정부
로크(1632~1704)의 『통치론』(1689)은 같은 도구로 정반대 결론을 끌어낸다. 로크의 자연상태는 전쟁상태가 아니라 자연법이 지배하는 상태다. 모든 인간은 생명, 자유, 재산(property)에 대한 자연권을 가지며, 노동을 섞은 것은 자기 소유가 된다는 노동소유론이 여기서 나온다. 문제는 전쟁이 아니라 불편이다. 공통의 법, 공정한 재판관, 집행력이 없어 각자가 자연법의 재판관 노릇을 해야 한다. 따라서 계약의 목적은 절대권력 수립이 아니라 자연권 보호의 위탁이다. 정부는 신탁(trust)을 받은 수탁자일 뿐이므로 권력은 제한되고 분립되어야 하며, 신탁을 배반한 정부에 대해 인민은 저항권을 가진다. 이 논리는 명예혁명을 정당화했고 미국 독립선언문에 거의 그대로 이식됐다. 인식론에서 본유관념을 부수고 경험에서 출발한 로크(경험론 1강)가, 정치에서도 주어진 권위를 부수고 개인의 권리에서 출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루소: 사슬의 기원과 일반의지
루소(1712~1778)는 계약론을 한 번 더 비튼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5)에 따르면 자연상태의 인간은 비참하지도 악하지도 않았다. 자기애와 연민을 지닌 채 흩어져 살던 인간을 타락시킨 것은 사유재산과 사회 자체다. "어떤 땅에 울타리를 치고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말할 생각을 해낸 최초의 인간이 시민사회의 진정한 창립자다." 그러므로 기존의 계약은 부자가 자기 재산을 지키려고 빈자를 속여 맺은 사기 계약이다. 『사회계약론』(1762)의 첫 문장이 이 진단을 요약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 루소의 과제는 사슬의 제거가 아니라 정당화다. 각자가 자신의 모든 권리를 공동체 전체에 양도하되, 그 공동체의 일반의지(general will)에 스스로 참여함으로써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상태를 만드는 계약이 그것이다. 일반의지는 사적 이익의 합계(전체의지)가 아니라 공동선을 향한 의지다. 이 사상은 인민주권과 프랑스혁명의 이념이 됐지만, "일반의지에 불복하는 자는 자유롭도록 강제된다"는 구절은 전체주의의 씨앗이라는 비판(탤먼, 벌린)을 받아 왔다.
세 자연상태 비교와 계약론 자체에 대한 반론
| 구분 | 홉스 | 로크 | 루소 |
|---|---|---|---|
| 자연상태 |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 자연법이 지배하나 불편함 | 평화롭고 순진한 고립 상태 |
| 문제의 근원 | 공통 권력의 부재 | 공통 재판관의 부재 | 사유재산과 불평등의 발생 |
| 계약의 내용 | 주권자에게 권리 전면 양도 | 정부에 권리 보호를 신탁 | 공동체 전체에 양도, 일반의지 참여 |
| 정당화되는 국가 | 절대주권 | 제한정부와 저항권 | 인민주권 공화국 |
계약론 전체를 겨눈 고전적 반론도 알아 두어야 한다. 흄은 「원초적 계약에 관하여」에서 실제로 계약한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태어난 나라를 떠날 수 없는 가난한 농부의 "묵시적 동의"는 배에서 뛰어내리라는 말과 같다고 꼬집었다. 현대의 캐럴 페이트먼과 찰스 밀스는 고전 계약이 여성과 비백인을 계약 주체에서 배제한 성적 계약, 인종 계약이었다고 비판한다. 계약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정당화의 사고장치로 되살린 사람이 롤스이며, 그것이 다음 강의 주제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국가에 한 번도 명시적으로 동의한 적 없는 우리는 왜 법에 복종할 의무를 지는가. 동의 말고 다른 근거가 있는가.
- 홉스의 자연상태 논리는 오늘날 국제관계(세계정부의 부재)에 그대로 적용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