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철학 5강. 마르크스: 물구나무선 변증법을 바로 세우다
헤겔에게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정신이었다. 마르크스는 묻는다. 그 정신은 밥을 어디서 먹는가.
풀고 시작
헤겔 뒤집기: 청년헤겔파에서 유물론으로
마르크스(K. Marx, 1818~1883)는 좌파 헤겔주의, 곧 청년헤겔파에서 출발했다. 2강에서 본 대로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라는 명제를 개혁의 요구로 읽은 진영이다. 포이어바흐가 먼저 뒤집기를 시연했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본질을 하늘에 투사해 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 전도를 종교에서 멈추지 않고 헤겔 철학 전체에 적용했다. 『자본』 제2판 후기의 표현대로, 헤겔에게서 변증법은 "머리로 서 있다. 신비한 껍질 속의 합리적 핵심을 찾으려면 그것을 뒤집어야 한다." 모순을 통해 운동한다는 형식은 살리되,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를 절대정신에서 물질적 생산 활동을 하는 인간으로 바꾸는 것, 이것이 유물론적 변증법이다. 그는 종교 비판에 안주하는 옛 동지들도 겨냥했다. 하늘의 전도만 고발하고 그 전도를 낳는 지상의 조건을 놔두는 것은 절반의 비판이라는 것이다.
소외된 노동: 1844년 수고
파리 시절의 『경제학 철학 수고』(1844, 사후 1932년에야 출간)는 헤겔의 노동 개념(주인과 노예 변증법을 상기하라)을 자본주의 분석에 접목한다. 노동은 본래 인간이 자기 본질을 대상 속에 실현하는 활동인데, 임노동 체제에서 이 활동은 네 겹으로 소외(Entfremdung)된다. 첫째, 생산물로부터의 소외다. 노동자가 만든 물건은 남의 소유가 되어 낯선 힘으로 그와 맞선다. 둘째, 생산 행위로부터의 소외다. 노동이 자기실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견디는 강제가 되어, 노동자는 "노동 바깥에서야 비로소 자기 곁에 있다". 셋째, 유적 본질(Gattungswesen)로부터의 소외다. 자유롭고 의식적인 생산이라는 인간다움 자체가 생존 수단으로 전락한다. 넷째, 그 결과인 인간의 인간으로부터의 소외다. 초기의 이 인간학적 언어가 후기의 과학적 분석과 연속인가 단절인가는 마르크스 연구의 고전적 논쟁이다(알튀세르는 인식론적 단절을 주장했다).
유물사관: 토대와 상부구조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859) 서문이 유물사관의 압축 정식이다. 물질적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사회의 토대(Basis)를 이루고, 그 위에 법, 정치, 종교, 철학 같은 상부구조(Überbau)가 선다. 그리고 저 유명한 문장이 온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생산력이 자라 기존 생산관계와 충돌할 때 사회 혁명의 시대가 열린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그 모델이다. 이 도식은 곧바로 경제 결정론이라는 반론에 부딪혔다. 사상과 정치가 한낱 그림자라면 마르크스 자신의 저술 활동은 왜 필요한가. 만년의 엥겔스는 경제가 "최종 심급에서만" 결정적이며 상부구조도 되작용한다고 해명했지만, 결정의 강도를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계속된다. 포퍼가 유물사관을 반증 불가능한 사이비 과학이라 공격한 것도 이 지점이다(과학철학 과목에서 다룬 반증주의의 대표 표적이 마르크스주의였다).
상품 물신성, 그리고 열한 번째 테제
『자본』 제1권(1867) 1장의 상품 물신성(Warenfetischismus) 분석은 소외론의 성숙한 후신이다. 시장에서 상품 가격들이 저희끼리 오르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배후는 인간 노동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사물들 사이의 관계라는 환상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 이것이 물신성이다. 마치 종교에서 인간이 만든 신이 인간을 지배하듯, 인간이 만든 상품과 화폐가 자립해 인간을 지배한다. 철학의 임무에 대한 결론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1845) 11번이 못박았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해석과 변혁이 정말 대립하는가, 변혁의 이름으로 수행된 20세기 실험들의 실패는 이론의 책임인가 배반인가. 평가는 갈리지만, 철학을 강단 밖 역사의 한복판으로 끌어낸 힘에서 그를 능가하는 19세기 철학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