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론 3강. 흄: 인과의 해체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적 연결"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본 것은 반복뿐이다.
풀고 시작
경험론의 끝까지 간 사람
흄(1711~1776)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중심 인물로, 26세에 『인간 본성론』을 완성했다("인쇄기에서 사산됐다"고 자평할 만큼 안 팔렸다). 그의 도구는 명료하다. 지각은 생생한 인상(impression)과 그 흐릿한 복사본인 관념(idea)으로 나뉜다. 검사 규칙: 어떤 관념이든 그것이 유래한 인상을 대라. 못 대면 그 관념은 내용 없는 소리다. 로크의 규칙이 최종 병기가 됐다. 그리고 지식은 두 부류뿐이다. 관념들의 관계(수학, 부정하면 모순)와 사실의 문제(세계, 부정해도 모순 없음). 이 갈퀴(흄의 포크)에 걸리지 않는 책은 "불태워라"가 그의 결론이었다.
인과 관념의 부검
사실의 문제에 대한 모든 추론(내일의 일출, 빵의 영양)은 인과에 기댄다. 그럼 인과 관념의 출처 인상은 무엇인가.
당구공 지각을 다 뒤져도 나오는 것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적 선행(A가 먼저), 공간적 근접(붙어 있음), 항상적 연접(constant conjunction, 늘 잇따라 일어남). "필연적 연결"의 인상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필연의 관념은 어디서 오는가. 흄의 답이 반전이다.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온다. A 다음 B를 수없이 본 뒤, A를 보면 마음이 저절로 B를 기대하게 되는 습관이 생긴다. 그 내적 이행의 느낌이 필연의 인상이다. 인과의 필연성은 세계의 접착제가 아니라 마음의 버릇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필연을 읽어낸 것이 아니라, 자연에 필연을 투사해 왔다.
귀납의 문제
더 깊은 균열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A 다음 B였다"에서 "다음에도 그럴 것"으로 넘어가는 다리는 무엇인가.
- 연역인가? 아니다. "내일은 다르다"가 모순이 아니다.
- 경험인가? "귀납은 지금까지 잘 맞았다"로 귀납을 옹호하는 것은 순환이다. 문제가 되는 바로 그 원리(미래는 과거를 닮는다)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결론: 귀납은 이성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과학 전체가 올라탄 다리에 논리적 교각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귀납을 멈출 수 없다. 그것은 추론이 아니라 본성(습관)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는 흄의 유명한 문장은 이 구도의 일부다. 자연이 우리 대신 믿어 준다.
이것이 흄의 귀납 문제다. 칸트를 "독단의 잠"에서 깨웠고, 포퍼의 반증주의(과학철학 과목)와 현대 인식론의 표준 난제로 남아 있다.
기적에 대한 보너스 논증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의 유명한 응용문제. 기적(자연법칙 위반) 보고를 믿어야 하는가. 증언이 참일 확률과 법칙 위반이 실제일 확률을 저울질하면, 증언이 거짓일 개연성이 언제나 더 낮아야만 기적을 믿을 수 있는데, 자연법칙은 인류의 전 경험이 떠받치는 최대의 규칙성이다. 베이즈적 사고의 원형이 여기 있다.